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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의 발달과정

킨더포츠스토리

 

1. 체육의 발달과정



1) 체육개념의 변천

 

체육의 학문적 연구는 17세기 중반 이후 광의의 체육헌상으로서 신체나 건강에 관한 의견과 논설을 기술한 코메니우스, 로크, 루소, 설러 등의 사상가, 신체활동의 의의와 중요성을 학교교육에 도입시킨 체조가 및 인체측정 .신체발육의 형태적 연구.운동생리학 분야를 다룬 의학자 둥에 의해서 부분적 으로 태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체육의 과학적 연구는 18~19세기 초부터 체조(gymnastics)의 개념으로 근대체육의 기초를 쌓은 몇몇 체조가들에 의하여 시도되었지만, 체육에 대한 용어가 최초로 문현상에 기록된 것은 텔사르 트(Delsarte, 1760의 "Education Physique"와
코페르리히(Körperlich, 1787)의 "Physiche Erziebung"에서 비롯된다.
이 용어는 1840년대 신체(physique)와 교육(education)의 합성어인 Physical Education"으로 개념화되었고, 스펜(Spencer, 1861)와 맥클라렌(Maclaren, 1869)에 의하여 일반화되었다.
당시 체육의 개념은 히치콕(Hitchcock, 1881)에 의하여 "신체의 교육", "신체에 관한 교육"라는 내용으로 정립되자 체육은 신체발달, 체력증진, 건강 또는 위생을 목표로 하는 신체활동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전통적 인식은 "Physical Culture'나 "Physical Training"과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되어 군대 또는 학교체육의 프로그램에서 대근활동, 운동기능중진, 건강, 피로제거 등을 포함하는 "Physical Fitness" 개념넘으로 현상화되었다.
그러나, 1910년대 이후 신체 그 자체를 교육(education of physical)하는 것이냐 혹은 신체를 매개로 하는 교육(education through physical)적 활동이냐 라는 논쟁이 재개되었고, 1930년대에 이르러 윌리암스(Willams), 오베르테퍼(Oberteufer) 등의 "체육은 신체활동을 통하여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한 인간을 형성하는 교육의 한 분야"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신체를 통한 교육의 개넘으로 전환되었다.
전인교육론적 정의는 체육이 학문적 전문성을 갖추게 되면서 신체운동 자체에 대한 기본개념.방향, 운동지각 향상에 대한 관심을 움직임 교육(movement education)이라는 용어로 발전시켰으며, 또한 운동에서 인간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을 인간행동 측면에서 운동현상을 탐구하는 인간운동(human movement)개념으로 확대시켰다.

 


2) 세계 체육의 발달과정

(1) 고대 체육

1.그리스 체육

고대 그리스 체육은 인간의 조화적 발달을 중요시하고 체육을 불가결의 것으로 생각하여 전인적인 발달과 결합시킨 점에서 현대의 체육과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는 하나의 통일된 사회가 아니고 분리되고 대립되어 동일 민족이 종교적 신앙일치를 통하여 연대감을 갖는 지역에서만 말이 통했을 뿐이다. 따라서, 체육도 그것을 구성하는 더욱 적은 사회(도시국가)로 분리해서 살퍼볼 필요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체육이다.

 


가) 스파르타 체육

스파르타는 강력한 군대 양성을 복적으로 군국주의적인 체육을 실시하였다. 또 일반 교육의 목적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완전한 신체를 가진 용감한 병사를 기르는데 있었다. 스파르타에서는 "행동의 인간"을 강조하는 단일 목표가 체육의 최정점이었다.
스파르타 어린이들은 출생하면 국가에서 신체검사를 하여 허약하든지 병이 있으면 타이게투스(Taygetus)산에 버렸다. 검사에 합격한 어린이들은 7세가 될 때까지 가정에서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고, 7세가 되면 국립공동교육소에 수용된다. 이 곳의 교과는 창던지기.씨름.달리기.수영 .체조 둥이었다. 30세까지 그들은 계속된 군사훈련과 규정된 신체단련에 전력을 다해야 했다. 그리고 나서 30세가 되면 모든 남자는 시민권을 얻어 가정을 갓게 되지만, 국가가 계속 병역복무를 요구할 경우에는 50세가 되어도 퇴역을 하지 못하였다.
스파르타의 여성교육은 남성교육과 비슷한데, 소녀들은 여러 반으로 나뉘어져 소년들과 같은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남자와는 훈련장을 따로 사용했으며, 병영에서 생활하지 않고 가정에서 거주하였다. 소너들은 20세까지 신체훈련을 받는데, 20세가 되면 가정을 갖게 되며 훈련은 중지된다. 이러한 훈련의 목적은 건강한 아이를 낳을수 있는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였다. 스파르타에서 행해진 신체운동을 종합해 보면 질주.도약.수영.수렵. 레슬링.권투: 판크라치온.구기 :승마.원반.창.장거리 도보행군 등이었다. 무용에는 체육무용 .제전무용.군사무용이 있었는데 이것들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스파르타의 체육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양성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와 같이 군사적 지위를 얻기 위하여 스파르타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개성 .가정생활 및 평화적 문화를 희생시켰던 것이다.

 


나) 아테네의 체육

아테네에서 교육은 국민생활의 통합적 기능을 가지고 발전하였다. 따라서, 체육의 목적도 교육의 일반적 이상에 따라 신체단련뿐만 아니라, 신체를 통하여 개성을 발전시키는 데 있었다. 그들의 체육목표는 미와 조화라는 그리스의 이상과 일치하였다. 위정자들은 체육의 목적을 군사력 강화에 두러고 하였으나, 철학자나 예술가는 신체운동을 통한 미적이고 이상적인 인간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젊은 사람들은 조화가 이루어진 신체를 만들려고 노력할 필요를 느꼈고, 그 운동도 미적인 수준에 맞추어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힘이나 속도.지구력 등 기록수립보다 운동의 형식.우아성 또는 기술을 보다 중시하였다
아테네에서는 어린이가 태어나면 양육문제는 아버지가 결정하였다. 어린이들은 보육소에서 7세까지 어머니와 유모 밑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남자 어린이는 7세부터는 팔레스트라(Palaestra)라는 사립훈련소에서 체육훈련을 받았고, 다디스칼레움(Dadiscaleum)이라는 교육소에서 문학.음악 및 산수를 습득한 다음 16세가 되면 짐나지움(Gymnasium)으로 옮겨 가서 신체훈련과 더불어 철학적 토론이나 사상적교화 등 사회생활의 기회를 제공받는다. 18세가 되면 아테네인의 서약을 하고, 2년에 걸친 엄격한 병역 복무를 마친 후 자유시민이 된다.
여성은 스파르타와 같은 적극적인 활동은 없고, 주부생활을 목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학문을 가르치지 않았다. 간단한 읽기와 쓰기는 어머니와 유모를 통해서 배웠고. 기타 요리 및 가사처리 등을 배웠을 뿐이다. 그래서 아테네의 여성들은 스파르타의 여성과 같은 건강한 신체와 활달한 기상이 없었으며 남자와 같이 지혜롭지 못하였다.
그 외에도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올림피아 제전경기는 제우스(Zeus)신을 위하여 4년마다 개최되었는데, 이러한 올림피아 제전경기는 그리스 도시국가의 통일과 평화를 유지하고 학문과 예술을 교류하여 찬란한 그리스 문화를 이룩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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